Clostridium botulinum

Clostridium botulinum은 혐기성 환경에서 생육하며 포자를 생성하는 그람양성의 간상 세균(rod-shaped bacteria)입니다. 대부분 토양에서 발견되는 이 세균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체에 치명적인 보툴리눔 신경독소(botulinum neurotoxin)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독소에 노출되면 보툴리누스증(botulism)이 유발되어 여러 가지 마비 증상이 나타나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Emile van Ermengem에 의해 1895년 햄에서 처음 발견^​1​되었으며 botulinum이란 이름도 라틴어로 소시지를 의미하는 “botul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Bacillus 속으로 분류되었으나, Ida A. Bengtson에 의해 추후 Clostridium 속으로 재분류^​2​되어 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종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C. botulinum은 보툴리눔 신경독소를 생산하는 능력에 따라 구분되는데, 생산되는 독소의 혈청학적 특징에 따라 A부터 G까지의 독소형(toxinotype)을 나타냅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C. botulinum이 유전형, 표현형 적으로 뚜렷하게 4개의 그룹(I~IV)으로 나뉘는 불균일한(heterogeneous) 종이라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룹 I과 II가 인간, 그룹 III이 동물에게 보툴리누스 증을 유발하며 그룹 IV는 병증과 대체로 관련이 없습니다. 그룹 IV에 속하는 C. botulinum은 이후 Clostridium argentinense로 다시 명명되었습니다^​3​. 인간에게 감염되는 균주 중에서 그룹 I은 독소 A, B, F를 생산하고 그룹 II는 독소 B, E, F를 만들어냅니다. 2종류 이상의 독소를 가지고 있는 균주도 확인되었으나 하나가 발현되면 다른 하나는 발현되지 않았습니다. C. butyricum과 C. baratii라는 균주도 각각 독소 E와 F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툴리눔 신경독은 눈이나 호흡기 같은 곳의 점막이나 위장관계를 통해 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체내에 들어간 후 신경독은 혈액과 림프 순환계로 흡수되어 운동 신경 말단에 전달되고 신경전달물질의 분출을 막아 근육에 신호가 전달되지 못하게 합니다. 보툴리누스증의 대표적인 임상 증상으로는 복시와 동공 확장, 발음 장애, 입 마름, 안면마비 등이 있으며, 병이 진행되면 팔다리의 마비, 호흡기 장애가 뚜렷해집니다. 호흡근육 마비는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4​.

인간의 보툴리누스증은 크게 식품 매개 보툴리누스증, 외상성 보툴리누스증, 흡입형 보툴리누스증, 영유아 보툴리누스증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식품 매개 보툴리누스증으로 보존 처리가 잘 안 되어 보툴리눔 독소에 오염된 식품을 섭취하여 식중독에 걸리는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관찰됩니다. 외상성 보툴리누스증은 C. botulinum의 포자가 상처로 들어간 후 혐기성 환경에서 번식할 수 있을 때 드물게 나타나며 마약 투여자의 약물 남용 사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흡입형 보툴리누스증은 아주 드문 형태로 생물 테러를 목적으로 에어로졸 형태로 살포하는 경우 호흡기로 흡수되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아 보툴리누스증은 대부분 생후 6개월 미만의 유아에서 발생하며 미리 형성된 독소를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섭취된 포자가 박테리아로 발아하여 장 내에서 독소를 배출함으로써 병증이 발생합니다. 성인과 어린이는 섭취하더라도 장내 자연방어가 세균의 발아와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아기에게는 꿀을 먹이면 안 되는 것이 상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C. botulinum의 포자에 오염된 꿀을 섭취하여 유아 보툴리누스증에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4,5​. 

흥미롭게도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 중 하나인 보툴리눔 신경독은 균주에서 분리된 후 치료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보툴리눔 독소를 근육에 주사하여 신경전달물질(아세틸콜린)의 방출을 억제함으로써 근육의 과도한 수축을 완화 시키는 작용을 응용하여 치료제 및 미용 목적으로 제품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보툴리눔 독소의 사용 목적은 치료용 60%, 미용 목적 40%로 나뉘며^​6​, 2019년도 미국 성형외과 의사협회에서 발표한 2018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비침습적인 최소한의 시술 사례 중 보툴리눔 독소를 이용한 시술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미용적 수요가 많아지고 있습니다^​7​.

의약품으로 판매되는 보툴리눔 독소는 Type A와 Type B 두 가지입니다. 이 중 Type A를 이용한 치료제가 먼저 출시되었습니다. 1977년 Alan B. Scott이 처음 사시 환자에게 보툴리눔 독소 type A를 사용하여 치료하였고 1980년에 이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8​. Oculinum 사를 설립하여 제조, 판매하였으나 제조물 책임보험의 문제로 인하여 유통이 어려워졌고 1989 Allergan사와 합병하여 Botox로 상표명을 변경하고 1991년 12세 이상의 환자에서 사시, 안검경련 등에 FDA에 최초 승인을 받았습니다.

미국 FDA에서 승인을 받은 제품은 3개사 4품목, 영국은 3개사 5품목, 한국은 7개사 19품목이 승인되었으며, 전 세계적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제품은 엘러간사의 보톡스입니다. 보톡스는 미국에서 눈꺼풀 경련, 사시 증 치료로 시작하여  만성 편두통, 방광염 등 14가지 질환에 대해 허가받았습니다.

C. botulinum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유해한 균주로 처음 발견되고 알려졌지만, 보툴리눔 신경독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현대 의학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생물이 되었습니다.